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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M Newsletter 11호, 2008년 11월

Posted By admin On October 29, 2008 @ 18:23 In Newsletter | No Comments


2009년 8월 3-6일 예배와 음악 컨퍼런스
[1] www.worshipnmusic.org 준비모임(10월 13-14)에 참석한 전국각지에서 모인 실행위원들

인사의 글
그동안 불리었던 한미목회실을 한미목회연구소로 이름을 개정하여 봅니다. 그리고 이름과 걸맞게 그동안 준비한 연구실적을 여러분께 소개드림이 매우 기쁩니다. 드디어 영문학술지 Journal of Korean American Ministries & Theology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창간호는 한국교회 예배를 주제로 하여 5개의 Article과 5개의 논문 Review를 모았습니다. 저널은 계간지로서 앞으로 설교, 미술, 음악, 목회상담, 신학, 성서 등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에 속한 한인교수들의 편집자문을 받아 진행하려고 합니다. 창간호를 인쇄출판으로 기대하였으나 아쉽게도 재정이 허락되지 않아 웹에 올려놓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합니다. 웹 주소는 [2] www.webkam.org/journal 입니다. 저널 전체를 다운로드하여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에 로라 멘델홀 총장님께서 사임을 발표하고 2009년 여름서부터 임무가 시작될 새 총장을 선출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족을 위하여 그리고 학교의 미래를 위하여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한 총장의 사임은 학교전체를 술렁이게 하였습니다. 특별히 총장님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시작된 한미목회 연구소의 미래가 새총장의 출현으로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지금 준비하여야 하겠기에 긴장이 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준비는 재정후원의 일입니다.

세계경제가 모두 어렵고 힘들기에 우리 모두 예외는 아닌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울 때에 가장 활발히 그리고 헌신하여 일하여야 할 곳이 주님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이 자기의 힘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모든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찾는 때이기 때문에 새로운 일군을 더 세워야 하고, 키워야 하며, 우리의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여야 하는 절실한 때입니다.

그러기에 Living Waters와 South Atlantic대회에 속한 한인교회들을 돕고자 시작된 한미목회연구소의 사명은 더욱 막중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1년동안 연구소가 할 일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평신도 제직훈련 프로그램

    목회자 계속교육

    2세목회자 및 영어목회 후원

    교회음악/교회교육 예배 컨퍼런스

    신학생 훈련 및 장학금 모금

    영문 저널 발행

    한국교회와의 관계모색

할 일은 너무나도 많은데 연구소에 할당된 기금이 없습니다.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기 위하여 모금운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목표는 $50,000입니다. 각 교회에 학교에서 편지를 보낼 계획입니다. 그리고 목사님들께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부디 적극적으로 도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각 교회 1년 선교예산에서 $1,000만 작정하여도 60여개의 양 대회 교회(미자립교회 포함)가 힘을 모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미 학교에 선교지원을 하고 계신다면 Korean American Ministries로 Designate하여 주십시오. 한인교회와 한인 신학생들이 받는 혜택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힘이 모아지면 연구소의 활성화가 이루어질것을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허정갑 목사

Rev. Paul Junggap Huh, Ph.D.
Assistant Professor of Worship and Director of Korean-American Ministries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

성서정과 11월(A) 설교자료

*현재「목회와 신학」별지부록「그 말씀」에 연재중인 허정갑교수의 “교회력에 따른 설교”를 매달 뉴스레터와 함께 제공합니다. 성서정과(Lectionary)를 따르는 예배와 설교를 준비하시는 교회와 목회자 분들을 위하여 설교본문안내를 합니다. 본문에 대한 예배자료와 참고문헌은 [3] www.textweek.com을 참고하세요.

종말과 심판

11월 1일: 성도추모일

계7:9-17; 시34:1-10, 22; 요일3:1-3; 마5:1-12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때에 결코 혼자가 아니다. 먼저 교회가 있고, 성령이 있으며, 우리를 안내하는 성경, 그리고 성도가 있다. 성도는 우리보다 먼저 신앙의 길을 걸어간 수많은 그리스도의 증언자들로서 우리의 길을 안내하고 이끌어 준다.

성도를 추모하는 이 날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지나간 신앙의 조상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는 결코 혼자 갈 수 없는 그 길을 믿음으로 먼저 간 그 분들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신앙을 본받아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를 기도함이 마땅하며 성도추모일은 믿음의 조상과 그들의 신앙을 기억하는 축제의 시간인 것이다.

오늘의 본문 계시록은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증인의 수가 허다함을 기록하고 있다. 아무도 셀 수 없는 숫자이다. 이 땅의 삶에서 하나님을 노래한 그들이 이제는 어린양의 보좌 앞에서 영원히 노래한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하고 물어보니 요한은 하나님께 그 대답을 돌리니 주님은 말씀하시길 이들은 고난을 견딘 신실한 자들이라고 하신다. 이들은 환난 중에 믿고, 소망하며, 증언하고, 또한 사랑을 베푼 자들이다. 이제 이들은 큰 목자께서 닦아 주시는 눈물에서 그가 인도하시는 생명수 샘물로 다가간다.

성도들은 이제 흰옷을 입고 행진하며 하나님 보좌 앞을 입장한다. 매 주일마다 우리는 예배를 준비하며 입장의 행진을 2000여 년 동안 하여왔는데 성도란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가며 우리의 길을 안내한 자들이다. 흔히 우리는 새로 교회에 온 사람을 마땅히 부를 직책이 없기에 OOO성도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OOO신도 혹은 교우가 옳을 것이다.

성도는 우리에게 주일학교를 통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어려울 때 기도하여 주신 어른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신 할아버지 목사님들이시다. 그 분들이 안 계셨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는 신앙의 선생님들을 말한다. 그 분들을 특별히 기억하며 그들의 거룩한 삶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설 수 있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특별히 하나님나라의 오심으로 인한 종말의 심판을 준비하여야 하는 우리에게 믿음의 본이 되어 우리를 기다리는 허다한 성도의 무리가 있음은 크나큰 위로가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11월 2일: 31번째 평주일

수3:7-17; 시107:1-7, 33-37; 살전2:9-13; 마23:1-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2절) 심판의 경고가 스며있는 가르침이다. 가식과 외식으로 치장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대상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그들의 결정적인 실수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2절) 있음을 지적하고 계신다. 지도자가 되기보다는 섬기는 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가르침은 Leader가 되기 전에 Follower가 되어야 함을 말한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 지도자일수록 그 심판의 기준이 더 무거운 것이다. 그러기에 말만 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자들이 그들의 행위를 드러내어 보이려고 하는 겉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모세의 법은 365개의 금지사항과 250개의 율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사람들 어깨에 지우는 무거운 짐으로 존재함을 예수님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11:30).

높이 오를 줄만 아는 사람은 언젠가 떨어질 때가 있음이 당연한 이치이다. 남을 심판하는 사람에게도 본인을 심판하는 날이 오기 마련이다. 심판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지도자이기를 조심하고 그 권위를 그리스도에게 돌려야 함을 말한다(10절). 윗자리에 앉기를 탐하기보다 겸손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오히려 낮게 임할수록 더욱 높아짐을 약속하신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셔서 가장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셨지만 그 생명은 영원히 하늘의 보좌에 계심으로 우리에게 가장 높은 왕으로 임하신다.

오는 주일을 성도추모 주일로 지킨다면 오늘의 본문 또한 먼저 가신 신앙의 성도들이 걸어간 모습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가 성도로 칭하며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같이 자기를 높이지 않고 낮추어 남을 섬기며 겸손히 우리를 이끌어준 사람들이다. 그들이 우리의 기억에서 남아있는 것은 그들이 율법의 자리에서 우리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며 행동으로 본을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가르침 중 가장 쉽고도 어려운 사항이다.

11월 9일: 32번째 평주일

수24:1-3a, 14-25; 시78:1-7; 살전4:13-18; 마25:1-13

우리에겐 “내일하면 되지”라고 미루는 습관이 허다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지며 우리의 행동과 결정을 지금 당장 이 순간 요구하고 계신다고 가르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멈추시고 다가오실 때 우리는 과연 준비되어 있는가?

하나님나라는 순식간에 우리에게 임하심을 고백하며 신랑을 기다리는 열 명 처녀들의 비유를 예수님은 가르치신다. 그 중 5명은 준비되고 5명은 준비하지 못한 모습이다. 준비된 자들은 잔치에 참여하고 준비되지 못한 자들은 쫓겨남을 말한다. 준비된 자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허둥지둥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그 날을 기다리는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

본문은 마태복음의 공동체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기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기다리기에 지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땅에 임하시기를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만 하는 우리들에게도 마태복음의 비유는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그 때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다린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 이천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기다림에 무디어져가며 마지막 시간의 긴박함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삶에 익숙하여진 것인가? 그러나 우리의 삶은 결코 영원하지 못하다. 끝은 있기 마련이다. 준비되어 있는가? 이제 마태복음의 마지막에 이르며 교회력을 따르는 시간의 종점에 와 있다. 시간이 다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미련을 갖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로맨틱감정을 갖고 누구든 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여유롭게 생각한다. 그러나 본문은 칼을 자르듯이 냉혹한 면을 강조한다. 준비된 다섯 처녀들은 자기들의 기름을 결코 나눠주지 않고 있다.

서로 나눠 쓰지 못하는 점이 본문의 핵심은 아니다. 그 핵심은 준비성에 있다. 그리고 가짜 신랑의 목소리에 현혹되어 기름을 낭비하지 않는 지혜에 있다. 24장 5절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경고하심과 같이 우리 주위에는 종말의 두려움을 자극하여 상품화시킨 유혹의 손길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더욱 깨어서, 바라보고, 준비하여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 예수님은 본문의 비유를 마치면서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말씀하신다. 천지개벽의 떠들썩함인지, 세미한 음성의 임하심인지, 도둑의 발자국 소리인지, 임산부 출산의 고통인지 아무도 모르게 갑자기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을 준비함을 재촉하신다.

11월 16일: 33번째 평주일

삿4:1-7; 시123; 살전5:1-11; 마25:14-30

달란트 비유는 청지기의 주제보다는 종말에 대비한 예수님의 마지막 비유의 가르치심이다. 마치 한 아기의 생명이 부모에게 주는 엄청난 축복과 잠재력에 비교된다.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며 그 달란트가 커져나감을 확인하여 가는 삶의 모습과도 같다. 본문의 비유 또한 그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주인은 그 무한한 가능성을 기대하며 기쁨의 수확을 바라보고 종들에게 투자한다. 모든 종들은 같은 가능성을 안고 일을 시작하나 한 종은 두려움에 휩싸여 그의 가능성을 펼치지 못한다. 종말의 심판이 두려운 것이다.

두려움에 눌리어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처럼 주인에게 불손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내리시사 평생을 통하여 그 포장을 열어보도록 안내하신다. 우리 자신이 그 선물로서 어떤 때는 우리 자신도 깜짝 놀라는 엄청난 선물들을 말한다. 우리의 달란트는 여러 모습으로 사용되어진다. 어떤 달란트는 세상에 도움이 되고, 어떤 달란트는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어떤 달란트는 아무 도움이 되어보이질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믿음이다. 이 믿음이 바로 세상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으로서 이를 받은 자들은 받은 것을 나누어야 할 책임이 있다. 전하여야 한다. 복음의 기쁜 소식을 유통시켜야 한다. 요사이 경제침체에 따른 경기가 안 좋으니 자기만 살겠다고 숨겨놓음을 지적하고 계신다. 믿음은 나누어야 성장한다. 그러므로 믿음과 받은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필요 없는 자임을 경고하고 계심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새로운 법을 펼치시는데 하나님이 주신 것은 잘 사용하여야 옳지 그렇지 못하면 있는 것까지 다 빼앗김을 가르치신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은 구원의 열매로서 또한 다른 사람의 열매를 위한 씨앗과 같이 사용된다. 세리와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받은 선물의 율법을 그저 지키기에 급급하여 사랑으로 나누지 못하였음을 지적하시며 예수님은 반대로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십자가에 투자하여 모든 사람과 그 사랑을 나누심을 보이신다. 그 씨앗의 열매가 바로 사랑으로서 우리도 또한 계속하여 나눔이 천국시민의 모습임을 확인시키신다.

벤 존슨은 콜롬비아 신학대학원 은퇴교수로서 현대사회의 죽어가는 교회의 다섯 가지 증상을 말하고 있다:

1. 신앙은 사적(private)임을 주장한다. 종교는 개인적임을 말하는 것이다.

2. 자기교회만이 전부임을 주장한다. 교회 사람들만 돌보면 된다고 한다.

3. 편협하고 방어적이다. 변화를 거부하며 항상 이래왔음을 주장한다.

4. 믿음은 지식인의 자산으로서 하나의 성취하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5. 감성은 금물로서 열정적인 신앙인을 경멸한다.

한 시대의 유실물로서 있다가 없어지는 존재가 아닌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나라를 지향하는 신앙인들은 받은 달란트를 아낌없이 나눌 수 있어야 하겠다.

11월 23일: 그리스도 왕 주일

겔34:11-16, 20-24; 시100; 엡1:15-23; 마25:31-46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시자 우리의 심판관이시다. 최후의 심판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 세상의 기준 그 이상의 것을 바라봄에 있다. 마지막 심판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은 모든 것이 끝났을 때에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인자는 모든 민족을 양과 염소로 분별하듯이 나누리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기준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얼마나 도왔는지를 중심으로 평가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는 결코 편안하지가 않다. 언젠가 우리도 심판을 받게 됨이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 보좌 앞에 서서 우리의 삶을 모두 비추어 보며 옳고 그름을 가리신다. 심판을 조명함은 오늘 주일이 그리스도 왕으로서 한 해를 마감하는 주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이미지 또한 목자가 하루의 일을 마감하며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우리에 넣는 그 시대 아주 보편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계신다. 털이 많은 양은 밤의 추위를 견딜 수 있기에 바깥쪽에 자리 잡고 추위에 약한 염소는 안 쪽으로 위치하여 밤을 준비시킨다. 여기에서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냐의 질문보다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서 두 그룹으로 나눠진 무리의 중심에 있는 목자는 왕의 절대적 권한으로서 나눠진 백성들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하나님을 사랑함이 이웃을 사랑함과 같다고 강조한다(22:37-40). 이웃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듯 함을 다시 확인시키며 하나님나라를 준비하는 삶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종말과 심판’ 시리즈는 신실한 종(24:45-51), 열 처녀(25:1-13), 그리고 달란트 (25:14-30)비유를 통하여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모습을 가르치고 있다. 공동체는 그 시간을 정확히 모르지만 깨어 있어서 갑자기 닥치는 왕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하며 그 기쁨의 잔치를 준비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왕 주일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조명하며 윤리적 변화를 추구하여 왕과 신하된 백성으로서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요, 왕 되신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교회력의 한 해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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